말끝에 담긴 우리 마음
예수님께서는 종종 옛 율법을 하나하나 거론하시면서 율법의 문자만이 아니라 거기에 담긴 정신까지를 더욱 깊게 가르쳐주셨다.
십계명의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거론하시면서 단순히 사람을 죽이는 살인뿐만 아니라 거기에 담긴 정신을 가르치시고 있다.
자기 형제에게 화를 내는 사람, 자기 형제를 ‘바보’라고 하는 사람... 자기 형제를 ‘멍청이’라고 하는 사람... 이렇게 말로써 남을 가슴 아프게 하는 사람은 사실은 말로써 남을 죽이는 살인과 같다고 하셨다.
사실 우리도 절제되지 못한 말로 남을 많이 죽인다.
나 자신부터도 성격이 급해서 화를 잘 내는 편이다. 그래서 다스릴려고 무척 노력한다.
나도 남이 하는 일이 못마땅해서 마음으로는 ‘바보 같이...’ 하면서 투덜댔던 적도 많다.
나도 남이 하는 일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되어서 ‘멍청한 사람’이라고 남들 앞에 욕했던 적도 있다.
우리가 남에게 나쁜 말을 하면 그 에게 아픔을 주게 된다. 그리고 그 아픔은 오래 간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아픔이 독이 되어 내게로 되돌아오게 되어 있다.
우리가 남에게 좋은 말을 하면 남에게 기쁨을 주게 된다. 그리고 그 기쁨은 오래간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기쁨이 두 배가되어 내게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때때로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거친 말, 절제되지 못한 말들을 마구 쏟아낸다. 내 기분에 따라 격한 말들을 막 쏟아 낸다.
우리가 생각은 이렇게 또 저렇게 많이 할 수 있다. 생각으로는 하루에도 집을 몇 채씩 지었다가 부술 수 있는 것이 우리다. 이렇게 생각은 수없이 하고 또 지울 수 있지만, 말은 다르다. 말은 한 번 쏟아내면 결코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말은 한 번 쏟아내면 모두가 혼처럼 세상에 떠다니게 된다. 여기 저기... 온 데를 다 떠다니는 게 내가 쏟아낸 말이다.
그러니 생각보다 말이 훨씬 더 중요하다.
생각은 마음속에서 그치지만... 말은 구천을 떠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그래서 옛날부터 대인, 큰 사람은 항상 말조심, 입조심을 해왔다.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이 스스로를 잘 다스릴 수 있는 완전한 사람이 된다고 켔다. 퇴계 이황 선생님 말씀, “사람이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은, 그 실천하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기 때문이다.”
말은 지멋대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 나오는 것이다. 내가 쓰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내 속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내가 남을 좋게 생각하면 좋은 말이 나오고, 나쁘게 생각하면 나쁜 말이 나온다.
내가 남에게 좋은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은 그를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남에게 화를 내는 것은 그를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남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하는 우리를 반성한다.
아직도 남을 진정으로 용서하지 못하는 우리를 반성한다.
말끝에 담긴 우리 마음을 생각하면서 말에 실수가 없도록 거듭 노력해야겠다. 아멘.
대구 대교구 전광진 엘마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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