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화

[스크랩] 미친소 주유소

비안김 2008. 5. 27. 23:46

  미친소 주유소


  서울에서 홍천으로 가는 44번 국도, 홍천을 10km 정도 남겨놓고 옛날 며느리 고개가 있던 곳에 지금은 며느리재 터널이 있습니다. 며느리고개라는 이름에는 슬픈 전설이 있답니다.

  옛날 한 노인이 며느리와 함께 친척집에서 받은 선물을 당나귀에 싣고 고개를 넘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고갯마루에 도착해 보니 매달아 놓았던 짚신 꾸러미가 보이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노인이 짚신을 찾으러 다시 고개 너머 왔던 길을 갔다가 한참 만에 돌아오니 며느리는 보이지 않고, 당나귀만 있었습니다. 짚신을 찾으러 간 시아버지를 기다리다 못한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찾으러 산 속으로 들어간 것이었지요. 지금 길이 잘 나 있지만 옛날 산길에는 호랑이도 나타날 수도 있었겠지요. 진짜 호랑이에게 물려갔는지, 어떻게 된 일인지는 잘 모르지만 시아버지를 찾으러 간 며느리는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 뒤로 시아버지가 있는 여자들은 이 고개를 넘지 않았고, 사람들은 이곳을 ‘며느리고개’라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운전을 하다가 이 며느리재 터널을 앞두고 주유소가 홍보로 써놓은 안내판을 보고 처음에 깜짝 놀랐습니다. 한글로 ‘미친소 주유소 전방 2km’라고 쓰여 있습니다. 터널을 지나 고개를 내려오면 거기 조그만 주유소가 있고 이름이 ‘미친소 주유소’입니다. 한 달 넘게 ‘미친소 파동’으로 나라가 어수선하기 훨씬 이전의 이야기입니다. 지난해 8월 홍천으로 이사 갔을 때부터 그 간판을 보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저는 홍천을 거쳐 돌아올 때는 이왕이면 하는 마음으로 일부러 ‘미친소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곤 하였습니다.

  왜 ‘미친소’를 좋아하느냐고요? 처음에 주유소 이름이 왜 하필 ‘미친소’일까? 라고 생각하며 기름을 넣으러 가 보았더니 정작 주유소의 간판에는 한글로 ‘미친소’에 가로 안에 한자를 써 놓았더군요. 美. 親. 笑였습니다. 친절하게 설명을 해 놓았더군요. 아름다운 마음으로, 친절하게, 늘 미소 지으며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유소가 되겠다고 말입니다. ‘미친소’가 이런 뜻이 될 수도 있다니!

  제가 ‘미친소’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 것은 실상 이름 때문은 아닙니다. 가격 때문입니다. 양평 부근이 비싼 편이고 홍천으로 가까이 오면 조금 가격이 싸지지요. 그런데 그 중에서도 ‘미친소 주유소’가 다만 10원이라도 더 저렴했답니다. 시골 아주머니들이 시장에서 콩나물 값을 다만 100원이라도 깎는 마음으로 저도 다만 10원이라도 싼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습니다. 그런데 미친소 파동 이후 한글로 삐뚤게 써서 호기심을 자극하던 ‘미친소’ 홍보 안내판은 슬쩍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정말 미친소 파동과 때를 맞추어 기름 값이 미친소처럼 오르더니 ‘미친소 주유소’가 인근 다른 주유소보다 10-20원 정도 더 비싸게 받는 거예요.

  제가 이제 ‘미친소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겠습니까? 아니겠습니까? 당연히 아니지요. 한자말 이름과 달리 별로 아름다운 마음으로, 친절하게 미소 지으며 가름을 넣어주는 것도 아닌데다 가격이 10원이라도 비싸면 당연히 안 가게 되지요. 제가 경제학과 출신인데 가장 기본적인 경제 원리는 따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

  다시 며느리고개의 전설로 돌아가서 생각해 봅니다. 과연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찾아서 산 속으로 들어갔다가 호랑이에게 잡혀 먹혔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호랑이에게 잡혀 먹힐망정 더 이상 고된 시집살이는 하지 않으리라, 기회는 찬스라고 생각하며 산 속으로 줄행랑을 친 것은 아닐까요? 하하.

  미친소 파동을 잠재울 수 있는 묘안이 없을까요? 정말 국론이 갈라지는 현상이 안타깝고, 나라가 걱정이 됩니다. 그런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언제나 진실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냥 미국산 쇠고기 안전하다는 말로 국민을 달래려고 하지 말고 처음부터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바라보고, 그것을 인정하고 고쳐나가는 것이지요. 미친소 파동의 해결이 절대로 美. 親. 笑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얼굴에 미소를 띠고 가장 친절하게 아름다운 말로 미친소 파동을 잠재우려 한다면 미친소는 더 날뛸 수밖에 없습니다.

  성 이냐시오는 “사랑은 말이 아니라 행동에서 드러나야 한다.”고 했지요. 진정 국민을 사랑하고 국민의 건강을 걱정하고 아낀다면 정부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일본은 20 개월 미만의 미국산 소만 수입하도록 협상했는데 왜 우리만 30 개월 넘은 쇠고기를 수입하도록 협상했는지는 어떤 美. 親. 笑 로도 국민을 납득시킬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아무도 제가 이제 더 이상 10원 더 비싼 ‘미친소 주유소’에 가지 않는다고 저를 욕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부당한 일이니까요.

출처 : 홍천 영혼의 쉼터
글쓴이 : 류해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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