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화

[스크랩] 깊은 감사는 높은 기도를, 높은 기도는 많은 은총을

비안김 2008. 5. 14. 13:17

깊은 감사는 높은 기도를, 높은 기도는 많은 은총을

 

 

 

삶에서 가장 큰 힘은 바로 감사입니다. 미사를 감사제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항상 감사하면서 기도하십시오.

 

순수 우리말인 '삶'이란

 

우리는 시간의 흐름 안에서 삶이라는 단어를 떠올려 봅니다. 삶이란 무엇일까요?

순수 우리말인 ‘삶’이란 단어는 바로 두 가지 언어가 하나 된 말이라고 합니다.

첫째는 살다, 살리다. 둘째는 알다. 알리다. 즉 삶이란 말은 살리는 것을 알다는 뜻 혹은 살린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같은 말을 할 때도 따뜻한 정을 담아하면 사람은 사랑을 느끼고 기분이 좋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사람을 살리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그 사랑의 말을 듣고 기뻐할 때 그뿐 아니라 그 따뜻한 말을 한 자신도 마음이 따뜻해짐으로써 자신역시 살아가는 생명의 기쁨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죽이는 말을 하면 그을 듣는 사람뿐 아니라 하는 사람도 결국 죽음의 그늘을 경험하게 됩니다. 요한복음서에서 영원한 생명 즉 영원한 삶이란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삶이란 단순히 생명을 유지하거나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는 물질적인 개념이 아니라 천상의 덕인 사랑과 믿음과 희망을 알고 실천할 때 이루어지는 시간을 의미합니다.

 

 

감사하는 생활을 하십시오.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언제나 하느님께 찬미의 제사를 드립시다.

하느님의 이름을 우리의 입으로 찬양합시다.” (히브리서 13,15) 이 말씀은 항상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같은 조건에서도 인간의 삶은 그 사람의 사상과 행동에 따라 달라집니다. 삶에서 가장 큰 힘은 바로 감사입니다. 미사를 감사제라고 하지 않습니까? 미사를 통해 하느님의 생명인 천상의 양식으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을 이렇듯 알고 먹는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신앙이 없는 세상의 사람들은 희로애락을 삶으로 압니다. 슬픔은 슬픔에 모든 것을 맡깁니다. 기쁘면 기쁨에! 분노에는 분노에 그 마음과 몸을 맡깁니다.

우리는 자주 남과 자신을, 우리가정과 남의 가정을 비교합니다.

행복을 물질의 잣대로 파악합니다. 그것은 바로 현대의 선악과입니다. 하느님이 주신 오늘이라는 에덴동산에서 우리는 유혹을 받습니다. 바로 비교라는 선악과입니다. 이 그릇된 비교주의는 하느님의 섭리를 가리고 불평을 낳고 감사라는 천상의 시력을 눈멀게 하는 독소를 가진 과일입니다.

 

그러므로 비교를 하되 ‘감사하는 삶’이고자 노력하십시오.

 

이것은 어려웠던 때를 잊지 않고 늘 기억하는 데서 나오는 감사입니다. 가난했던 과거와 그런대로 살만한 지금을 놓고 비교하는 것이며 건강한 지금과 병약했던 과거를 비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감사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님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깊은 감사는 높은 기도를, 높은 기도는 많은 은총을 내린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지하철에서 묵주기도를 하는 어느 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할머니! 무슨 지향으로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셔요?”

“네 신부님! 바로 저 앞에 고등학생을 위해서요! 저를 위해 글쎄 자리를 양보해 준 착한 여학생입니다!

다리가 아팠는데!”

가난한 자식들에 대한 원망보다는 입교 후에 묵주기도를 통해 매사에 감사하게 되었다며 웃으시는

할머니의 밝은 삶의 빛은 그 묵주처럼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삶에서 고통을 느낄 때 기도하십시오.

 

우리는 고통을 신비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영광을 겸손의 차원에서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고통 안에서 신비를 발견합니다. 고통과 분노가 엄습해도 우리는 이를 신비의 차원 안에서 기도를 통해 사랑의 차원으로 변화시킵니다. 참으로 자살의 시대, 우울증의 시대, 암의 시대라고 합니다. 물질의 풍요위에 정신적 빈곤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희로애락의 서로 상반된 감정이 아닙니다. 바로 환희, 빛, 고통, 영광의 네 신비가 조화를 이루며 묵주기도 안에서 성모님과 예수님의 생애를 통해 우리에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고통의 순간에 연옥 영혼들을 위해 봉헌하고 예수님과 성모님의 수난을 묵상합니다.  

성모님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계속되는 고통의 삶을 사셨습니다.  

성모님이라 해서 삶의 고단함으로부터 예외인 존재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성경에도 예수님으로 인해 받았던 성모님의 고통이 여러 장면 등장하는데, 이중 일곱 가지 장면을 모아 성모칠고(聖母七苦)라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삶은 피하고 싶은 고통의 연속입니다. 그러니 삶에서 고통을 느낄 때 성모님께 기도하십시오. 당신께서 겪으셨던 그 고통을 이제 나도 겪고 있으니 도와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어머니께서는 간구하는 우리의 기도를 외면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성모님의 고통이 우리에게는 희망이 됩니다.

 

“누가 내 어머니요 형제냐? 라고 물으신 주님, 바로 여기 함께 한 우리 성모기사회원들이 바로 당신의 어머니요 누이요 형제가 아니고 누구이겠습니까? 이들의 가정에 축복하시고 늘 함께하시어 당신 모친 성모마리아의 겸손과 순명을 통한 구원사업에 동참케 하시고 가정을 지켜주시며 또한 천상 복락에 이르게 하소서! 아멘

 

신앙인은 감사로 출발하여 감사로 열매 맺는다고 합니다. 주님의 부활을 감사로 시작하십시오.    

 

 

허윤석 세레자요한 신부 -의정부 교구,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위원 상장례학교장

 

출처 : 월계동영원한도움
글쓴이 : 아우구스티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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