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태복음화모델-산위의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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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천국처럼 살기 ‘산 위의 마을’(충북 단양군 가곡면 보발리)은 무소유, 정직한 농업, 사랑과 배려의 공동생활로 참된 행복을 추구하는 가톨릭 신앙공동체이다. 예수의 가르침인 자발적 가난을 실천하지만, 그들 가운데 진정 가난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산 위의 마을은 자신들의 빛을 산 아래의 복잡한 세상을 향해 밝게 비추고 있다. 설립배경 90년대 후반 한국사회는 퍼스널 제품과 PC통신이 본격 출현하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문화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중요한 커뮤니티를 담당하던 공동체가 해체되었다. 빠르게 진행되는 소비문화와 급격한 개인화가 가져오는 위기 속에서 공동체를 살리는 길을 절박하게 찾아야 했다. 소비문화는 산업사회의 대표적인 현상이다. 산업사회의 첨단을 달리던 미국과 일본에서는 이미 ‘산업사회 최대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소비문화가 국가 산업을 견인하고 있었다. 이 소비 사회는 단순한 상품 판매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품이 끊임없이 업그레이드되면서 사람들은 점점 더 소비를 강요당했고 쓰레기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앎’과 ‘삶’의 일치를 위한 공동체
운동 박 신부는 이 구조를 극복하기 위해 예수살이 공동체를 시작했다. 예수살이 공동체는 지금까지 소비사회에 맞서는 대안을 실험하며 11년째 이어져 왔다. 그러나 공동체의 출발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만약 예수님께서 지상에 다시 내려오신다면 어떤 삶을 살려고 하실 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고민 끝에 ‘가장 생태적이고 조화로운 모습으로 이 시대에 목표를 제시하자’는 사명으로 2004년에 ‘산 위의 마을’을 꾸렸다. 산 위의 마을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20명의 구성원이 한 식구가 되어 생활하고 있는 산 위의 마을은 예수 본래의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가톨릭 사제와 신자들의 모임인 ‘예수살이 공동체’의 실천 현장이다. 1998년 창립한 예수살이 공동체에서 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영성과 사회의식을 함께 지닌 청년들을 배출하면서 무소유로 살며 노동과 기도, 나눔을 실천할 공동체 건설을 추진해왔다. 실제의 삶에서 구현하기로 하고, 2002년 박기호 다미아노 신부(57)를 중심으로 마을 만들기에 들어갔다. 마침내 2004년 단양 소백산 일대에 밭 1만2천 평을 구입해 참가자를 모집한 끝에 입촌을 시작했다. 현재는 네 가족과 독신자 4명을 포함해 17명이 살고 있다. 이 가운데는 전교생이 여섯 명 뿐인 보발분교 5학년인 혜인이와 중학생 3명, 고등학생 한 명도 있다. 설립자인 박 신부는 “산 위의 마을이란 이름은 ‘산 위의 마을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너희의 빛을 세상에 비춰라’는 마태복음 구절에서 따왔다”며, “우리의 빛으로 산 아래 세상이 밝아지기를 소원한다”고 말한다. 산 위의 마을이 수도원과 다른 점은 구성원들의 인적 구조다. 수도원이 수사나 수녀 등 독신들의 공동생활 공간인데 비해, 산 위의 마을은 가정을 이룬 신자들이 중심이다. 네 가족 등 17명 무소유 자급자족 입촌 때 재산 내놓거나 공동체에 기부 산 위의 마을은 생산과 분배를 공유하는 무소유(엄격히 말하면 공동소유) 공동체이기도 하다. 밖에서 가져온 재산(돈)은 모두 공동체에 맡겨둬야 한다. 구성원들이 맡긴 돈은 공동체의 생활비로 1인당 매월 10만 원씩 차감되는 것 외에는 그대로 적립해두며, 자기 것이라고 마음대로 쓸 수 없다. 하지만 다른 무소유공동체와의 차이점은, 구성원이 공동체를 떠나는 일이 생길 경우, 들어올 때 맡긴 돈 중 생활비로 쓰인 것을 제하고는 돌려준다는 것. 산 위의 마을에서는 이 방식을 통해 구성원의 탈퇴 시 생길 수 있는 말썽의 소지를 없앴다. 공동체 참여를 희망하는 사람(꼭 가톨릭 신자가 아니어도 됨)은 한 달간의 참관 기간을 거쳐, 공동체와 당사자가 상호 동의할 경우 정식 구성원이 될 수 있다. 가족이 함께 들어오고자 한다면 식구 모두가 참관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한다.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지켜야 할 약속은 영적으로 성숙된 공동체 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기도·노동·공유·배려·정직 다섯 가지(이것을 ‘5계’라고 한다)이며, 이외 다른 규정은 없다. 공동체의 하루는 5시 45분 아침 미사와 함께 시작된다. 미사 후 식당에 모여 함께 식사를 하고 각자 맡은 일터로 나가는데, 공동체를 꾸린 지 올해로 4년째지만 다들 아직은 농사일이 서툴러 인근 주민들에게 자문을 구해가며 영농 기술이나 적정 작물을 익히고 있는 중이다. 산 위의 마을에서 재배하는 주요 작물은 더덕·콩·고추 등. 모두 유기농으로 재배한다. 멧돼지들 때문에 콩 두말을 파종하고도 닷되 밖에 수확하지 못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밭농사를 지어 올 봄엔 처음으로 3년생 더덕을 서울로 출하해 2400만원의 매출도 올렸다. 공동체의 삶 역시 수행의 과정
산 위의 마을에서는 새로이 공동체에 참여하는 구성원들에게 영성 교육과 농업 교육은 꼭 받도록 유도한다. 영성 교육은 예수살이 공동체에서 실시하는 ‘제자 교육’(하느님의 제자로 살아가기 위한 교육)을 권장하지만, 불교 정토회의 ‘깨달음의 시간’, 야마기시마을의 ‘연찬회’ 등 타 종교나 단체의 수련 프로그램에 참여해도 무방하다. 농업 교육은 전국 각지에 있는 귀농학교 중 한 곳을 이수하면 된다. 농사 적응에 바쁜 탓에, 타 공동체와의 교류는 아직 원활하지 못하다. 다만 개인적으로 기독교 공동체인 영국의 브루더 호프, 일본의 무소유공동체인 야마기시 실현지 등 외국의 공동체를 탐방하고 온 구성원들이 있어, 이들의 경험담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자녀 교육 부문도 산 위의 마을의 주요 관심 사항이다. 현재 공동체 내에는 초·중·고생 합해 5명의 아이들이 있다. 지금은 아이들을 관내의 제도권 학교에 보내고 있지만, 공동체적 세계관을 길러주는 데는 내부 교육 필요한 만큼 장기적으로 자체 대안학교를 추진할 계획이다. 한편, 산 위의 마을에서는 외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천국의 아이들’이란 공동체 생활 체험 프로그램도 실시 중이다. 신앙공동체로서 생태성 역시 중요시하기에, 산 위의 마을은 ‘가볍게 살기’에 대해서도 철저하다. 우선, 여러 대 있던 공동체 내의 차량을 한 대만 빼고는 모두 없앴다. 산중 생활에, 장볼 때 외에는 그다지 차가 쓸모없기 때문이다. 공동체 내에 여럿 있던 실내 화장실도 분뇨를 활용하기 위해 실외 생태화장실 2곳으로 모았다. 각 가정에는 화장실이 없기에, 야간에는 다들 요강을 사용한다. 그리고 내년부터는 현재 2마리 있는 소 마릿수를 대폭 늘려 유축복합영농을 실천할 계획이다. 소는 퇴비 생산뿐 아니라 산비탈 밭갈이에도 유용하다. 산 위의 마을의 장기 계획은 평야 지대에 제2의 공동체를 설립하는 것. 논농사 지역에 공동체를 세우면 산간에서는 자급자족하기 어려운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공동체 간의 인적 교류는 한곳에 오래 머무르는 데서 오는 갑갑함과 구성원 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자연 속에서 야성을 찾아가는 아이들 아이들은 성인 몫만큼의 노동도 담당한다. 산 위의 마을에서 축산은 아이들의 몫이다. 제때에 소, 염소, 닭에게 먹이를 주는 일이다. 노동으로 피곤한 육신을 편히 쉬게 하소서 아침 미사로 시작한 산 위의 마을의 하루 일과는 저녁 기도로 마무리된다. 저녁 7시, 꿀맛 같은 저녁식사를 끝내고 경당 2층 기도실로 모이는 공동체 구성원들. 산 위의 마을에서의 기도는 하느님과의 합일을 이루는 거룩한 행위이자 공동체적 영성을 다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기도실 중앙에 놓인 예수상을 중심으로 어른 아이 섞여 둥글게 둘러앉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찬양이 시작되고, 기쁨과 충만이 모두의 표정에 어릴 때쯤 감사와 반성의 기도가 이어진다. 잦아드는 오르간 소리에 맞춰, 조용히 눈을 감는 산 위의 마을 식구들. “오늘도 해는 서산에 지고 하루해가 저물었습니다. 매 순간 저희의 삶을 이끌어주심에 감사하나이다. 모두들 열심히 일했음을 아시는 만큼, 많은 알곡 여물어 기쁨을 노래하게 하시고, 오늘 하루 노동으로 피곤한 육신을 편히 쉬게 해주소서.” 새가족 맞는 날 한자리 모여 신앙고백 공동체가 새 가족을 맞는 날, 미사 때 박기호 신부 앞에 김영기(35)씨가 부인과 다섯 살 난 아들 강산이와 함께 앉았다. 김씨는 “항상 ‘참된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오다가 ‘당신과 한 몸 되어 평화를 누리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기로 결심했다고 신앙 고백을 했다. 그러자 사제의 질문이 이어졌다. “습관과 대인관계와 욕구 중 걸림돌 있음을 압니까” “우리는 여러분이 살아온 과거의 생애와 역사를 존중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당신을 만들어낸 과거의 생활 습관과 대인관계와 욕구의 성향들 중에는 공동체의 영성에 어울릴 수 없는 결함이 있고, 그것들은 공동체로 살아가는데 큰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있습니까?” “예,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공동체와 더불어 새롭게 살아가고자 이미 회개했고, 복음 정신을 따라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저를 부르신 주님의 은총으로 복음적이지 못한 가치관과 부정적 악습들을 단호히 끊어버리겠습니다.” 마을사람들 앞에서 낡은 옷 벗어 태우는 의식으로 신고 새 입촌자는 “과거의 욕망과 불신, 경쟁심과 미움과 상처의 옷을 벗어버리고, 평화의 옷으로 갈아입겠다”고 서원한 뒤 성당 밖에 나가 모든 이들의 찬양 속에서 낡은 옷을 벗어 태우는 의식을 했다. 외국어대 용인캠퍼스 학생회장 출신으로 전국유기농업협회 간사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간사로 각각 일했던 김씨 부부는 지난 3월부터 ‘산위의 마을’에 들어와 참관 생활을 해오다 이날 드디어 정식으로 공동체의 새 가족이 됐다. 운동권 출신으로 5년전 인연이 드디어 결실 김씨는 이 공동체의 모태가 된 예수살이공동체에서 5년간 사무국장을 지내기도 했지만, 정작 세속의 삶을 접고 깊은 산속의 삶을 선택하기까지 적지 않은 결단이 필요했다. 이곳에선 텔레비전을 볼 수도 없고, 술을 마실 수도, 컵라면과 햄버거와 아이스크림도 먹을 수 없다. 더구나 공동체의 삶을 살아보겠다고 입촌 했던 이들 가운데 네 가족이 결국 하산하는 것을 지켜보기도 했다. 막연한 환상은 금물…네 가족은 결국 하산 그래서 ‘막연한 환상’만 갖고 있다가는 쉽게 포기하고 만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도 그는 결국 세속의 삶을 접고 산위의 삶을 택했다. 아내가 뜻하지 않게 암으로 고초를 겪었고, 아들 강산이가 아토피로 고생한 것도 자연 속의 삶을 더욱 절실하게 했다. 암과 아토피, 세상의 고단함이 결단 재촉 결국 그들은 결단했고, 새 가족을 맞아들인 가족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그들을 온 몸으로 껴안았다. 박노해 시인의 형이자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의장이던 박 신부와의 공동체에서 함께 살기로 한 김씨부부는 민주화 투쟁의 마지막 대학생 세대다. 이날은 6·10 민주화 항쟁 20돌이기도 했다. ▷마을영성 1. 마을의 이상 1) 예수 그리스도의 ‘한 뜻, 한 몸사상’을 지상에서 실현하여 하느님 나라의 삶을 선취한다. 2) 마을의 삶을 통하여 시대 발전의 목표가 공동체적 세계관에 있음을 드러낸다. 3) 예수살이공동체 운동의 실재성을 증거한다. 2. 공동고백 1) 창조주 하느님과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성령이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고, 친히 우리 마을을 인도하신다. 2) 사람과 자연, 모든 존재 사물은 서로 한 몸으로 창조하셨다. 3) 모든 만물은 하느님의 것(公有) 이며, 하느님의 뜻대로 사용(共有) 되어야 한다 4) 기도와 노동, 무소유와 화친(관심과 배려)의 삶이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5) 가톨릭 교회의 신앙과 가르침을 온전히 따르며 타종교의 신앙과 비종교인의 선한 신념을 존중한다. 3. 산위 마을의 수덕생활 기도 / 노동 / 공유 / 배려 / 정직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의 길(신명 30,15;16)’을 알고 있는 우리 산위의 마을 가족들은 공동체의 수덕생활에 충실함으로써 하느님의 축복으로 자신과 가족들에게 서로 행복을 선사하며 무엇이든 성공할 것임을 고백한다. 1) 기도(祈禱) 신앙인은 기도로서 하느님의 영과 합일을 이룬다. 생명을 주시고 삶을 주재하시는 분의 현존을 항상 의식하고 어떠한 처지에서도 감사하며 기도하고 의탁하는 생활을 하며 모든 영광을 하느님께 돌린다. 공동체와 함께 기도할 수 있는 기회는 은총의 보화이다. 주님께서는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내가 있을 것이며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들어줄 것입니다(마태 18,19-20)”라고 약속하셨다. 공동체의 기도는 우리 공동체가 주님의 임재하심 속에 더불어 사는 가족임을 드러내는 징표이다. 그러므로 항상 기도하고 명상의 습관을 가지며 언제나 성서와 책을 가까이 하고 좋은 일에 감사하고 궂은일에 실망하지 않는다. 생활을 성사화 하고 성사를 생활화 한다. 어떤 일이든 하느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고 복음정신으로 판단한다. 바쁜 중에 잠시 멈춰 기도하는 이는 얼마나 행복한가. 2) 노동(勞動) 하느님 친히 노동하시고 인간 또한 노동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 세상을 건설하고 아름답게 보존하게 하셨다. 하느님은 창조를 통해 세상을 사랑하시고 사람은 노동을 통해 그 사랑을 세상에 표현한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노동을 건강과 가정을 윤택하게 하시고 모든 이에게 의식주를 제공하신다. 노동은 가장 거룩한 원초적 삶의 행위이다. 노동은 명상과 나눔, 자연의 섭리와 질서와 정직함을 배우며, 자연과 하느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을 얻게 하는 은총이다. 공동체는 노동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결사체이다. 인간은 노동 없이 사랑할 수 없고 노동에서 멀어지는 만큼 야성과 건강과 능력을 퇴화시킨다. 노동은 깨달음에로 가는 양식이다. 우리 공동체는 정직하게 노동한 대가로 먹고 쓰고 나누며 살아갈 것이다. 땀 흘리는 노동을 즐겨하고 손수의 도구를 사랑하고 불편함을 길들이도록 노력한다. 씨앗을 뿌리고 김을 매고 곡식을 거두는 손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3) 공유(共有) 우리는 만물의 주인이 하느님이심을 고백한다. 모든 소유는 하느님의 것(公有)이며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사용되어져야 한다(共有). 인간 세계에 갈등을 가져오는 모든 근원에는 소유욕과 지배욕이 있다. 내가 가진 것의 모든 가치는 서로 공유하여야 한다. 하느님은 인간을 통하여 능력이 없는 이를 살리시고 서로 사랑을 나누게 하신다. 그러므로 모두가 하느님의 공평하심을 깨닫고 찬양 드리게 하신다. 가난한 이를 곁에 두고 누리는 호사스러움은 결코 하느님의 선물이 못된다. 헛된 소유욕과 경쟁심으로 스스로를 천박스럽게 만든다. ‘자선을 위해서 모은다’는 자기 속임수에 빠지지 말라. 예수님은 머리 둘 곳조차 없이 무소유로 사셨지만 부족함이 없었다. 작고 적게 소유하라. 이익을 보거든 먼저 나눔을 생각하라. 부모의 유산을 개인적으로 소유하지 말라. 아씨시의 프란치스꼬 성인은 말하기를 “고상한 청빈이란 없다”고 했다. 자발적인 가난에 자부심을 가지라. 근검으로 모은 재산을 필요한 곳에 선 듯 내놓는 마음은 얼마나 부요롭게 보이던가. 4) 배려(配慮) 관심과 배려는 공동체의 가장 소중한 덕목이다. 공동체는 서로를 한 몸으로 여기는 삶이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을 먹고 인정받음으로 사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공동체 가족 누구도 한 몸 됨에서 소외되거나 고독해서는 안된다. 공동체에서 가장 두려운 일은 내면의 슬픔과 고독이 아무에게도 감지되지 못할 때일 것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함께 사는 이들에게 책임이 있으며 공동체가 허약해지고 있는 징표이다. 그러므로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 가족들에게 관심을 놓지 않으면 그의 기쁨과 아픔이 느껴질 것이며, 서로를 새롭게 일어서게 한다. 행복을 추구하되 타인의 행복을 존중해야 한다. 가족의 행복이 내게 기쁨과 위로의 에너지가 된다.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한 이기심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며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물러서는 발걸음은 얼마나 사뿐히 빛나던가. 5) 정직(正直) 하느님과 사람 앞에 정직하고, 하느님의 소리인 양심에 순명한다. 약속은 반드시 지키고 잘못됨은 솔직하게 인정하고 용서를 청한다. 솔직하되 타인의 처지를 존중한다. 우리 공동체는 생산과 생활에 있어서 사람의 정신을 흐리게 하거나 사람과 자연의 생명을 해롭게 하는 어떠한 일에도 손대지 않으며 권하지 않아야 한다. 많은 소출을 위하여 땅과 생명있는 것을 해치거나 중독시키지 말자. 우리 손으로 생산한 것은 먼저 우리 자녀에게 먹이도록 하자. 다수의 견해라도 그것이 이기적인 과실에 매여있을 경우에는 고독한 반대를 선택하자. 어떠한 경우에도 거짓말로 모면하려 하지 말자. 일이 잘못될 수 있지만 그것을 해결하는 가장 현명한 길은 진실과 정직이다. 잘 보이고 인정받기 위하여 위선하지 말자. 부족하더라도 진심과 겸손으로 ‘예’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하자(마태 5,37). 공동체는 순결성은 개인의 정직함으로 지켜진다. ▷산위의 마을생활 1. 마을이 지향하는 삶 1) 하느님의 섭리와 법을 찬미하며 기도하는 삶 2) 서로의 생명을 공경하고 기쁨과 행복을 선사하는 삶. 3) 노동의 즐거움과 안식의 평화를 찬양하는 삶. 4) 공동 생산과 공동 소유로 무소유의 풍요를 누리는 삶. 5) 자연 생태 환경을 돌보며 한 몸 됨을 추구하는 삶 6) 아이들을 모두의 자녀로 삼으며 사랑과 참된 행복을 가르치는 삶 7) 노인들을 모두의 부모로 공경하고 돌보는 삶 8) 긍휼한 이, 병든 이를 위로하고 건강을 회복시키는 삶 9) 영성과 전통, 민속 문화를 누리고 복구시키는 삶 2. 마을의 비전 1) 삶을 성사화 하고 성사를 생활화 하는 공동 기도 생활 2) 건강한 생산과 건강을 위한 노동의 생활 (농업, 임업, 약초재배) 3) 삶을 美學化 하는 예술의 생활 (문화취미, 예술, 문예, 공예 활동) 4) 공동체 세계관의 인간으로 양성하는 자녀교육 (공동 육아, 초 중 고등 과정의 대안학교) 5) 필요한 의식주를 자체 해결하는 자립과 검약의 생활 6) 건축과 에너지 재원의 자체 조달에 최선 (생태건축, 대체 에너지 사용) 7) 귀농 가정과의 연대와 협동 8) 도시 신앙인에게 안식의 공간을 제공 3. 생산과 산업 1) 식량 농업 : 식량의 자급화를 위한 밭농사 중심 생산과 논농사의 교환 2) 원예 작물 : 고랭지 채소 및 자연화 나물... 등의 생산 3) 임산 재배 : 유실수 과수, 버섯, 약재용 약초.... 등의 생산 4) 임가공 : 소득 증진을 위한 생산물의 가공 출하 5) 공예 제작 : 조각, 도예 등의 예술 작품 활동 4. 가족의 구성 1) 마을가족(정회원):공동생활 과정을 거쳐 마을가족의 정회원 자격을 얻은 이들 2) 부양가족(부양인):입회한 가족의 고등학생 이하의 자녀와 65세 이상의 친부모 3) 예비가족(준회원):정회원이 되기 전까지 공동생활을 수행하는 가족 4) 촌외가족(준회원):영성적으로 결합되어 마을 밖이나 도시에서 생활하는 가족 * 마을가족은 공동체 생활의 참관과, 지원기, 수련기 등의 수행을 거쳐 이룬다. ▷예 수 살 이 영 성 산위의 마을은 예수살이 공동체 영성과 정신의 실천 도장이다. 따라서 예수살이의 영성을 온전히 이어받고 아우르며 공동체 삶에 필요한 은사를 위해 실천적 영성을 강화한다. 1. 예수살이 영성 기반(基盤) 1) “예수의 인간성을 본받아" 하느님을 믿고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와 결합될 수 있는가? 하느님께서는 보이지 않은 당신의 존재를 그리스도 예수의 육화 강생을 통해서 인간이 볼 수 있는 모습으로 계시하셨다. 이로서 인간은 인간의 몸으로 한생을 사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고, 그리스도와 일치되는 몸이 곧 하느님과 온전한 합일을 이루는 길이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이 하느님께 이르는 길을 쉽게 만들어 주셨다. 우리 예수살이는 역사적 인물인 나자렛 예수의 인간됨에 매료되어 그 인간성을 본받고 닮아 사는 것이 곧 그리스도와 결합되어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임을 고백한다. 우리는 나자렛 예수께서 지니신 '완전 지고(完全 至高)의 인간성(人間性)'이 신인합일(神人合一)의 그리스도였음을 고백하면서, 우리도 예수의 인간성에 온전히 합일됨으로서 '완덕(完德)' 에 이르고자한다. 2) “하나의 몸으로 섬김” 만물은 모두 하나의 몸으로 창조되었으며 인간과 인간, 자연과 자연은 서로 다른 생김새의 지체를 이루는 하나의 몸이다. 모든 존재 만물이 하느님의 숨결로부터 생명을 얻었기에 모든 인간과 자연 사물은 하느님의 피조물이며 자녀로서 서로 하나의 생명인 ‘한 몸(共同體)’ 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웃을 자기 몸으로 여기고 사랑하라(마태 22,39).”강조하셨고, 어느 것 하나도 소외되거나 잃기를 원치 않으시고(마태 17,10-14), 당신의 가르침을 따르는 모든 이를 가족으로 삼으셨으며(마태 12,49-50) 오직 하느님의 법을 따르도록 하셨다. 차별과 억압, 패권 전쟁, 개발과 성장, 생명 조작으로 세계가 죽어 가는 것은 서로를 한 몸으로 보지 않고 지배와 착취의 대상으로 보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피조물인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 모두가 ‘하나의 몸’임을 고백하고 섬기는 조화로운 삶을 추구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우리 共同體(공동체)의 생각이다. 2, 예수살이의 이상(理想) : “지상에서 천국처럼” 사도행전 공동체를 통해서 드러난 삶은 예수의 가르침에 원초성을 담보하는 삶이었으며 역사상 가장 하느님 나라다운 모습이었다. 이는 하느님 나라가 관념이 아닌 실재하는 삶이라는 믿음을 제공한다. 인간의 철학적 사유와 사상과 이념은 현상적 해석이나 이성적 설명 만으로가 아니라 현재의 삶 속에서 실천적으로 나타나고 이루어져야 한다. 신앙의 고백도 마음이나 정신적으로만이 아니라 현실의 삶에서 이루어지고 보여 지고 진행되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가 신앙으로 고백하는 종국의 삶인 하느님 나라(천국)은 현재 우리가 사는 지금 지상의 현실에서 징조로서 예형으로 실천되어지고, 보여 지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예수살이공동체 운동을 통하여 구원의 실재인 천국의 삶을 ‘지금, 지상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이상으로 살아가려 한다. 복음적 가치에 입각한 인생관 세계관을 지니고 실천적으로 생활하는 것이 천국의 삶이라 고백한다. 3. 예수살이의 정신(情神) : "자유, 기쁨, 투신" 1) [소유로부터의 자유] - '광야의 유혹을 물리치신 예수' 예수는 소유에 대한 탐욕이 인간과 세상을 그르친다고 가르쳤다. 말씀 없는 빵, 공유하지 않는 소유는 인간의 영혼과 정신을 병들게 하고, 공동체 의식을 파괴한다. 시장경제 사회가 부추기는 소비 주의는 주체성과 의식을 구속하고 생태계를 죽음으로 몰아간다. 예수살이는 소유욕으로부터 해방되어 온전한 자유의 삶을 살고자 한다. 2) [가난한 이와 함께하는 기쁨] - '하층민의 벗으로 사신 예수' 예수는 가르침과 치유와 구마(驅魔)의 행적을 통해 온전히 갈릴래아의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였다. 불공정한 조건의 경쟁 속에서 탈락되고 소외된 이들과 친구가 되신 모습은 그리스도인이 지녀야할 삶의 참모습이다. 예수살이는 공동체 더부네들과 함께 우리 시대의 더욱 낮은 자리를 찾아가려 한다. 3) [현실에 도전하는 투신] - '예루살렘 십자가의 예수' 예수는 갈릴래아의 가난과 소외와 억압의 뿌리가 로마 제국의 압제와 예루살렘 성전 체제에 있다고 보아 예루살렘에 도전하셨다. 구조적 죄악에 폭행 당하는 하느님 나라의 파수꾼 역할이 예언자적 전통이었다. 지배권력에 대한 도전의 결과가 십자가 죽음이었다. 예수살이는 우리 시대의 역사현실과 죄악에 도전하는 자세로 살아갈 것이다. 4. 예수살이 4행 5계 - 4행 생활 - 1) 일 명상 : 매일 명상과 기도의 시간을 가지라. 2) 주 적공 : 매주 한 번 이상 타인을 위해 일하여 공덕을 쌓으라. 3) 월 찰고 : 매월 자신의 사도직과 다짐을 성찰하는 모임에 참가하라. 4) 연 공생 : 매년 일정한 기간의 공동체 생활을 하라. - 5계 생활 - 1) 기도하라. 하느님의 자녀로서 아버지와 대화할 수 있는 기도와 명상의 시간을 가질 것. 2) 노동하라. 육체를 사용하는 일과 불편함을 즐겨하여 건강을 돌보고 필요한 것을 얻을 것. 3) 배려하라. 이웃의 모든 사람에 대하여 관심과 배려의 마음을 가질 것. 4) 공유하라. 소유한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임을 고백하고 공유할 것. 5) 정직하라 하느님과 인간에게 정직한 태도를 잃지 말 것. 5. 예수살이의 성찰을 돕는 10계명 1) 하느님과 사람 앞에 정직하라. 2) 노동하고 명상하라. 3) 관심과 배려로 섬기라. 4) 자신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관대하라. 5) 작고 적게 소유하고 공유하라. 6) 생태 환경을 섬기고 돌보라. 7) 사람과 자연 생명을 해치는 직업에 종사하지 말라. 8) 불로 소득을 취하지 말라. 9) 취하지 말며, 오락과 잡기를 멀리하라. 10) 가정의 화평에 힘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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